어제 성도 중의 한분이 ‘내일 아침에 세 번째 말씀도 올릴거지요?’라고 묻길래 이 글에 함께 할 분들이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한편으로, 이 다섯 구절의 말씀을 올릴 때마다 ‘아, 이 말씀!’이라고 할 분들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고, 우리가 듣고, 읽었고, 줄치고 한번 쯤 외우겠다고 애썼던 말씀입니다. 또한 이 말씀으로 우리의 삶과 신앙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고백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새롭게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새롭게 되기를 멈추는 순간, 우리의 믿음은 뒤로 한참 물러가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익히 알고 외우기까지 하는 말씀이라도, 지금 이 순간 이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구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갈라디아서 2:20절의 말씀입니다. 벌써 이 구절만 보고도 줄줄 외울 분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우리의 삶의 겉모습이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달라진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밥은 먹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합니다. 거주할 집이 있어야 하고, 어제 만난 사람들을 오늘 또 만나야 합니다. 물론 삶의 양식 중에 변한 것도 있습니다. 주일엔 교회라는 곳에 가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사귐도 가집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내 삶이 변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범위를 조금 더 확대한 것이거나 내 삶의 일부를 종교생활로 대체했을 뿐입니다.
진정으로 내 삶이 변하는 것은
1)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살았던 과거의 삶(나 중심의 삶)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상에서 모두 청산을 하고,
2)내 안, 즉 내 삶의 가장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입니다. CCC에서 사용한 사영리의 그림을 떠올리신다면 쉽게 이해 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지금까지 내 개인적인 이미지나 개인적인 명예, 개인적인 흥미, 재미, 관심, 이런 것보다 예수님이라는 분에 대한 관심, 예수님의 삶에 대한 관심, 예수님의 관심에 대한 관심에 훨씬 마음이 움직입니다.
내 자아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기만 한다면, 더 이상 나의 출신, 신분, 나의 직업, 나의 소유에 대하여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집니다. 나와 남이 살고 있는 아파트 평수가 얼마인지, 나와 남이 입고 있는 옷의 메이커가 뭔지, 들고 있는 핸드백의 가격이 얼마인지 등등이 관심 밖으로 밀려납니다. 무엇이 중헌디??!!
심지어, 오해에서 비롯된 다른 사람의 나를 향한 시선이나 소문, 우리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어가는 상황까지도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것은 내 삶의 모든 자유를 그리스도께서 뺏으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얽매이게 했던 세상 삶의 모든 겉모습으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해주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있는 삶의 현장에서 이 자유함을 누리신다면, 내 삶이 얼마나 더 풍요롭게 변할까요? 이제 나의 관심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더욱 주님의 관심으로 사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에이레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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